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츠바라 히데노리 (문단 편집) == 상세 == 마츠바라가 5세 때이던 1970년에 그의 가족들은 후쿠미츠쵸에서 타카오카시로 이사했다. 1983년 토야마현립 타카오카공예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한 후에 [[도쿄]]로 상경, 애니메이터 양성학교였던 코쿠사이 애니메이션 연구소에 입학했다. 2년 동안 애니메이션 작화기법을 배우던 중, [[가이낙스]]에서 제작 중이던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파일럿 필름을 보고 감명을 받아, 가이낙스에 소속되어 있었던 지인에게 부탁해 가이낙스에서 동화 애니메이터 채용시험에 응시, 합격하여 동화 스턴트로 데뷔했다. 1985년 동화 스태프 데뷔 후 1988년 정식으로 가이낙스에 입사하여, [[톱을 노려라!]]를 시작으로 [[오타쿠의 비디오]]의 작화감독을 맡는 등 애니메이터로서의 실력을 꽃피웠다. 그러나 가이낙스가 아닌 외부 회사의 업무에 참여하는 등 가이낙스 자사 제작 애니메이션 업무에 소원해지자, 가이낙스의 초대 멤버 중 한 사람이었던 무라하마 쇼지에 의해 제작데스크를 빼앗기고 외부 스튜디오로 내몰리는 수모를 겪었다. 그래도 가이낙스에서 방출된 것은 아니었기에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작화감독을 맡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도 참여했으나 1996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종영 후 가이낙스를 퇴사해 한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된다. 가이낙스 퇴사 전, 톱을 노려라 당시에 만나 친해진 AIC의 애니메이터 [[고다 히로아키]]의 권유로 [[버블검 크라이시스]] 등 AIC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에 곧잘 참가했다. 92년작 버블검 크라이시스의 8화에 감명을 받은 만화가 [[후지시마 코스케]]는 여러 회사로부터 자신의 인기작인 [[오! 나의 여신님]]의 OVA 기획이 들어오자 AIC의 기획안을 바로 선택했는데, 이것은 AIC의 기획안이 고다 히로아키를 감독으로 하고 마츠바라를 캐릭터 디자이너로 선정하는 것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AIC에 의해 [[오! 나의 여신님]]은 1993년 첫 발매를 시작으로 5화를 끝으로 완결되며 성공리에 발매되었다. 이 작품은 후지시마 코스케의 독자적인 그림체를 소화해내면서 작화를 부드럽게 처리했다는 평을 받으며, 마츠바라의 캐릭터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후 역시 AIC에서 만든 오카자키 타케시 원작의 OVA [[정령사]] 등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가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AIC와 친하게 지내 가이낙스의 업무에 소홀해진 것이 가이낙스 퇴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가이낙스에서 나온 직후, 그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인기리에 방송된 [[와츠키 노부히로]] 원작의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의 판권원화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무렵 후지시마 코스케의 소개로 후지시마가 캐릭터 원안을 맡고 있던 게임 [[사쿠라 대전]]의 캐릭터 디자인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미소녀전문 애니메이터라는 별칭과 함께 큰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서 후지시마와의 작업라인은 더욱 긴밀해졌으며, 두 사람은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된다. 이후 사쿠라대전의 OVA, 극장판, TV애니메이션 전작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사쿠라대전의 주요 멤버로서 입지를 굳혔으며, 오! 나의 여신님 역시 계속해서 모든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으며 후지시마 코스케의 애니메이션은 곧 마츠바라 히데노리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2007년, 가이낙스 시절 자신의 실력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었던 [[사다모토 요시유키]]와 [[안노 히데아키]]의 권유로, 안노가 가이낙스에서 독립해서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주식회사 카라의 제작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카라]]에 입사, 키 애니메이터를 맡게 되었다. [[스튜디오 카라]]에서 키 애니메이터로 보임된 뒤 제일 처음 그린 일러스트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제작발표 뉴스기사의 판권원화였다. 2007년 9월 1일에 개봉한 [[에반게리온: 서]]에서 작화감독 · 디자인 웍스 · 원화를 맡았으며,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연재중인 만화판의 그림체를 기준으로 캐릭터를 정식으로 규격화하는 캐릭터 리파인 작업을 주도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의 차기작인 [[에반게리온: 파]]에서도 작화감독 · 디자인 웍스 · 원화를 맡았다. 이로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핵심멤버로서의 입지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12년 [[에반게리온: Q]]가 공개된 뒤, 마츠바라가 작화감독 진영에서 빠진 것이 밝혀졌다. 거기에 그가 담당했던 캐릭터 리파인 디자인이 혼다 타케시의 그림으로 바뀐 것 때문에 마츠바라의 팬 뿐만 아니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특유의 세련되고 일관성 있는 그림체를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카라에 여전히 소속되어 있으며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문제가 생긴 건 아닌 것 같고 Q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활동 자체가 줄었다. 나이도 있음을 고려하자. 이 사람 1965년 생이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마지막 작품인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 얼마나 참가할지는 불명이다. 사실 마츠바라 히데노리가 돌아와도 에반게리온의 실질적인 그림체는 [[사다모토 요시유키]]나 [[스즈키 슌지]]의 것이므로 저 둘이 돌아오지 않으면 마츠바라가 돌아온다고해도 예전 작화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츠바라가 그린 에반게리온 일러스트는 흔히 알려진 에반게리온 그림체보다는 [[후지시마 코스케]] 작화에 가깝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 컨벤션 행사에 2001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번 참가하고 있어서 서구권에서의 지명도도 상당히 높다. 행사 마지막 날에 커피숍에서 팬들에게 포위당한 채로 비행기 이륙 직전까지 사인을 했던 적도 있다. 성우 [[이노우에 키쿠코]]와는 [[오! 나의 여신님]]을 계기로 잘 아는 사이가 되었으며, 함께 애니메이션 컨벤션 행사에도 참가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그런 인연으로 이노우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라이브 토크쇼에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J-WAVE의 HELLO WORLD(2011년 7월 25일 방송분)에서는 마츠바라는 즉석에서 그린 아스카와 베르단디의 일러스트 보드를 청취자 선물로 내놓기도 했다. 2015년 1월에 발표된 에반게리온 2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달 표면에 롱기누스의 창을 꽂는 프로젝트"의 특전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오랜만에 카라 관련 작업에 이름을 올렸다. 일러스트는 롱기누스의 창을 들고 서 있는 아야나미 레이를 그렸다. 이 특전 일러스트를 소개하면서 주최 측에서 쓴 설명에 따르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작화감독 마츠바라 히데노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내 팬들에게는 생소한 상식이지만, 마츠바라의 별명은 '피에르(ピエール)'이다. 일본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명작인 "장화신은 고양이"를 본 마츠바라의 지인이, 이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인 피에르와 마츠바라의 외모가 매우 닮았다며 별명으로 붙여준 것이 시초인데, 지금은 본인도 이런 사실을 말하며 자신이 피에르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선 그가 Q에서 작화감독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가이낙스 출신 애니메이터들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며, 강판을 시켰다는 음모론까지 도는데 전혀 사실무근인 점으로 사쿠라대전, 망상대리인, 암굴왕, 에반게리온 등 그의 작품 활동은 대부분 가이낙스 출신 멤버들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다 현재 소속된 회사 카라는 가이낙스 인물들만 뭉쳐있는 곳이다. 오히려 가이낙스 멤버들과의 인맥으로 일을 하는 것에 가까우므로 이는 사실무근이라 할 수 있다. 나중에 본인 말로는 자신이 한때 활동이 적었던 건 [[이 세상의 한구석에(애니메이션)|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 전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